작은 생각들

아날로그 지향의 디지털정보 삭제

graybird 2017. 3. 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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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y)/ 아니오(n)

디지털의 기반위에 자리한  흔적이란 너무나 간단하게 삭제된다.
너무나 간략해서 마치 마지막 기회인양 물어오는 저 질문에
흠칫거릴 때가 많지만...대부분은 마음 먹은 대로 예(y)를 눌러버린다.
그리고는 끝이다...이후에 찾아오는 것이 후회이건
그리움이건 적어도 결단의 결과는 즉답으로 보여진다...
그것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이었던가에 상관없이...

스물 한 살 시절...훈련기간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처음으로 전화를 하게 해 주었을 때...
사실 부모님의 당부는 하나도 기억에 남질 않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던 낯선 세상의 여자가 얘기 하듯...
다시는 전화나 편지를 쓰지 말라던...
숨쉬는일 마저도 서럽던 신병의 가슴에
독화살 처럼 꽂히던 한마디 만이 남은 새벽 나는 잠들지 못했었다.

상경(병) 휴가를 나와서야 나는 그녀에게서 받은 편지를 태울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날로그적 추억의 소멸이란 그런 것이었다...
몇 날을 기다려 나의 사연이 그녀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
또 그로부터 몇날이 걸려...나를 찾아오는 이야기들...
시간의 텀을 두고 나누었던 대화와 무수한 기다림의 흔적들이
새까맣게 타버린 그리움 같은 재가 되어가는동안
몇 번이나 고개를 쳐드는 미련에 편지를 태우던 불을 껐다가...
다시 붙이고 껐다가 다시 붙이기를 몇 번을 반복하며,
그렇게 연기가 되어버린 추억은...기억이 되고...기억은 다시
차츰 그 농도가 옅어져 그저 흔적이 되어가고
지금은 그저 마음 속에 풀어놓은...잉크가 되어버려 이렇게 끄적이는 사연이 될뿐이다.
그것은...마지막 소멸의 과정 마저도 손끝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누르는 즉시 사라지는 디지털의 특성이 장점인지...단점인지는 아직...판단을 내리지를 못했다.
다만 이메일 같은 것에도 불태우기 기능이 추가 되었으면...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