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각들

매혈의 추억

graybird 2017. 5. 17. 17:38
90년도의 일이다.
1학년을 두 번이나 다니고 결국 고교 생활을 접어버린 나는 어른들의 세상을 기웃거리다  고등학교 학력 정도는 있어야 그래도 사람 흉내 정도는 내며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세상의 끝을 향해 달려 갈 것 같던 광란의 10대 생활을 잠시 멈추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외삼촌 댁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나 착실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하루아침에 개선 될 리는 없었다.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역시 나와 사정이 비슷했다.
한 때는 좀 놀던 놈들인지라 마음을 잡았다고는 하나...아직은 애들이어서 뜻이 맞는 놈들끼리 모이니 쑤시던 좀이 다시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학원의 오후 수업을 땡땡이 칠 때면 남는 것은 시간뿐인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늘 돈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기 전에 술 맛을 알아버린 우리에게 술값이 없다는 것은 고작해야 만화방이나 당구장을 전전하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던 중 한 녀석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당시 양정에서 서면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녹십자 건물이 하나 있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 피를 산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햄버거와 우유도 준다고 했다.
그 날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그리로 달려갔다.
내가 다니던 학원이 연산동 로터리에 있었으니 걷기에 먼거리는 아니었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접수처에서 우리는 제공자 신상 카드를 작성하였다.
그 카드에는 관리 번호 같은 것과 비교적 상세한 신상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런것이  어째서 필요한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서는 피를 사는 것이 아니고 혈장을 구입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 이외의 혈액 성분은 혈액을 채취한 주사로 다시 투여를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72시간이 경과하고 혈액이 다시 재생 된다고 안내포스터에 나와 있었다.
이 신상카드를 작성하는 것은 72시간이 경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혈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위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그런 미친 짓을 누가 하겠냐면서 피를 팔았고 8천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그곳에서 제공하는 햄버거와 우유로 점심을 때우고 나니 쓰지 않은 점심값을 합하면 한 사람당 돈 만원씩을 손에 쥐게 되었다.
돼지국밥 한 그릇이 2천원인가 2천5백원인가로 기억되니 술값으론 충분했던 것 같다.
우리는 3일에 한 번 꼴로 그 곳을 찾곤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72시간이 경과하기전 피를 파는 사람이 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그들의 생계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동안 몇 번의 매혈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들은 가족 혹은 타인의 신분증을 구해서 (아마도 혈액형이 같으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여러 개의 관리카드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고 아마도 그곳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 하는듯 보였다.
매 방문 때마다 로비에서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편을 갈라 티븨 채널 우선권을 놓고 싸우기도 하던 사람들...
처음엔 그저 일거리를 못 찾은 일용직 노동자 혹은 노숙자인줄로만 알았던 그들...
피를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뭘 모르던 그 시절에도 정말 슬프게 느껴졌다.

이후 서너달 정도 이어진 우리의 술값벌이 땡땡이는 우스운 오해로 막을 내렸다. 우연히 우리 팔뚝의 무수한 주사바늘 자국을 본 같은반 형님이 우리가 땡땡이를 치고 필로폰이라도 맞으러가는 줄 알고 학원측에 이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차후 땡땡이를 치면 학원에서 퇴출 시킬거라는 선생님의 엄포로 우리는 착실히 공부를 했고...
나는 결국 그 해 여름 시험에 합격해 부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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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총무 책임자가 내게 와서 헌혈 한 번만 해주면 안되겠냐는 부탁을 했다.
지부에서 금고의 사회 기여 차원의 헌혈 행사를 하는데 우리 금고의 할당 인원에서 한 명이 모자란다는 이유였다.
나는 거절했다.
파견 근로자인 내가 굳이 그런 행사에 내 피 까지 뽑아가며 기여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발적일 때 의미를 가지는 헌혈이라는 행위가 조직의 생색내기 행사에 이용되는 것도 달갑지 않고, 적십자 회비도 내지 않을 정도로 호감도가 낮아진 이유도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장병들의 피를 팔아먹은 군 간부들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저럴바에야 차라리 당사자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쥐어주는 매혈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덕에 기억을 더듬어본 매혈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