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
"말 안들으면 짤리는 수가 있어."
작은 꼰대의 짜증이 뒤섞인 협박성 발언에 죽통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던 것이 2주 전이다.
그 시간 동안 이 인간을 향한 나의 혐오는 나날이 깊어져갔고 더 이상 그의 부당한 업무지시나 갑질에
순응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한순간에 밥줄이 날아갈 수도 있는 파리 목숨이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보다 한 인간에 대한 견딜 수 없는 혐오가 더 커져 버렸다고 느껴버린 어제...
나는 그의 허락없이 퇴근을 해버렸다.
그의 허락이 없다고는 하나 사실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어차피 경비 도급을 맡은 회사의 직원이고
그 회사와의 근로계약과 경비업법에 따른 금융경비원의 업무를 수행하면 끝이었다.
그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이유는 없었다. 다만 을의 처지에서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뿐.
아침에 출근을 하고나니 막내직원이 살짝 귀띔을 해 준다.
"어제 허락없이 퇴근하셨다고 화내시더라구요."
이제 남은 일은 직장을 잃을 각오를 하고 그에게 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지랄을 해 준다면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주마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법률상으로 정해진 나의 신분과 내가 맡은 일을 정확하게 고지하고 더이상 그의 부당한 업무지시나 경비업법에
위반되는 지시에는 따르지 않을 것이며, 이전 까지 그가 해왔던 부당행위를 또박또박 알려주고 관계당국을
들먹이며 여의치 않을 때는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 의사도 있음을 알려주려 했다.
그리고 종일 굳은 표정으로 눈에 독기를 품고 그를 묵사발로 만들어 줄 말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작은 꼰대는 내게 지랄은 고사하고 말조차도 걸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되자 큰 선심이라도 쓰듯 먼저 퇴근하라는 말까지 내 뱉는다.
씨발 이게 아닌데....
온종일 날을 세워 온 탓인지...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피로가 몰려왔다.
코딱지만한 권한에 맞서는 일도 이렇게 피곤한데....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일은 한 인간이 견디기 얼마나 벅찬 일인가.
결국 세상은 고사하고 내 삶에서 권리를 찾는 일 조차도 버거운 내가...
sns에서 쏟아내는 분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퇴근길....
늘 사진을 찍곤 하던 그 다리위에서... 오랜만에 잔잔해진 물결을 보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어 몇 번이고 찍었던 그 풍경을 조금은 달라진 구도로 다시 한 번 찍어본다.
내가 할 수 있는일....
저 잔잔한 물결을 찍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