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몇 년 전이었던가...
서울의 한 변두리 산동네에서 볕이 들지 않는 방을 얻어 산 적이 있었지...
그 전까지 서향집에서 지내서였던지
여름 오후만 되면 찜통처럼 달아오른 방안에서
호흡을 가누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차라리 볕이 들지 않는 그 방이 좋았다.
이따금씩 저녁 무렵엔 뒷 산에 올라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시를 지켜보곤 하다가
어둠이 오기 전에 관짝같은 방안으로 돌아와
그녀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다시 읽어보곤 했지...
모두의 축복속에서 만난 사람과 아름답게 저물어가고 싶다더군...
여전히 내게 그런 황혼이란 멀리 있는 풍경이라 생각해.
그렇게 아름다운 저녁이 찾아 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풍경앞에 서게 되더라도 함께이고 싶었지.
얼굴 조차도 모르는 누군가의 아내가 된 그녀가... 먼 곳으로 떠나버린 후
나는 열 몇 번의 가을을 보낸 지금도 그 편지를 가지고 있어.
닿지 못한 인연에 슬픔이 찾아 올 때면 꺼내어 읽어보곤 하지...
그 때만큼 이별이 아프다고 느껴 본 적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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