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미터 아래 갱도의 끝은 더 나아갈 수 없는 생의 끝과 같아 광부들은 그 곳을 막장이라고 했다.
79년의 봄...
그 막장으로 향하던 협궤열차에서 폭약이 터졌고 그의 어머니는 시신조차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남편의 장례를 치루었다고 한다.
그가 국민학교 입학식을 치른지 한 달이 조금 넘은 날이었다.
밤늦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쓰러지듯 드러누워 밤새 끙끙 앓는 모습이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골짜기를 떠났다.
그는 매사에 신중함과 더불어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자신의 생을 제법 잘 가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따금 엿보이곤 하는 삶의 경건한 태도에서 나는 성직자 같은 느낌마저 받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는 그 이유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 골짜기를 떠나지 못했다면 자신 또한 어느 삶의 막장에서 유전자에 각인 된 검은 슬픔처럼 대물림 된 고통을 끌어안고
그날 밤의 아버지 처럼 끙끙 앓으며 살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결국 자신은 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거라고...
그가 골짜기를 떠나던 날 함백역 앞 신작로로 쏟아져 내리던 햇살이 눈부시게 슬펐다고 했다.
문득 떠올려 본 기억 속에서 셔터를 누르던 순간 더이상 누군가 떠날 일도 없고 돌아 올 일도 없는 자그마한 역사의 마당에 부서지는 했살은
찬란한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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